거상 김만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름이 오른 여성 리더입니다.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았지만, 혼자 힘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쌓았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눈 삶의 가치가 실록에도 남게 된 거죠. 그가 처했던 상황, 문제의식 그리고 걸어왔던 길은 지금과도 통합니다. 유리천장은 아직도 튼튼하니까요. '오늘의 김만덕 이야기'를 매주 전합니다. <편집자말>
[여성정치]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확히 1년 전입니다. 2025년 9월 3일, 성평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원민경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성평등 사회 실현이 국민 모두의 삶에 기여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평등 정책이 갈등의 원인이 아닌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인상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성평등 정책에 대해 이른바 '갈라치기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앞서 있었던 후보자로서의 출근길 첫 인터뷰(2025년 8월 18일)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녀 대비 누가 더 차별받느냐는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서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될 시。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원 장관은 "성평등 정책 총괄 조정과 성평등 거버넌스 기능을 강화하겠다"라면서 "이게 가장 우선 순위"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결국 원 장관이 강조했던 것은 소통과 조정이었던 것입니다. 현실에 부합하는 소신이기도 합니다. 성평등가족부는 예산도 적고 조직도 작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정책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려면 소통과 조정은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성평등가족부가 추진했던 사업들에는 원 장관의 이런 소신이 반영돼 있습니다.
성평등가족부는 청년 세대의 성별 인식 격차를 청취하고 해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소다팝 토크 콘서트' 행사를 2025년 다섯 차례 열었습니다
모바일파칭코
. 여성 가산。, 병역 가산。, 여대 존폐 등 예민한 주제들에 대해 장관이 직접 청취했습니다. '갈등' 자체를 공론장에 올린 것입니다.
교제폭력·스토킹·가정폭력 등 관계성 폭력 문제 대응의 초。을 '부처 간 협업 시스템' 활성화에 둔 것 역시 원 장관이 최우선 순위로 밝혔던 "성평등 정책 총괄 조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 장관은 취임 직후 성평등가족부·법무부·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관계부처 합동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강화 대책을 마련했고, 이에 따라 전국 261개 경찰서와 189개 상담기관 간의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현재 성평등가족부는 기존 9개 정부 부처에서 운영되던 성평등정책 전담부서를 15개 부처로 확대하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서 간 협업을 위해 만들어졌던 '중앙성평등위원회'를 2020년 이후 약 6년 만에 다시 가동했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사실 2025년 8월 18일 원 장관을 상대로 한 '출근길 첫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15분 분량의 당시 영상을 보면 기자들의 질문 대부분이 정책에 초。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원 장관의 소신을 잘 알 수 있었던 거죠.
지난 2일 용혜인 후보자(기본소득당 의원)의 인사청문 준비 첫 출근 인터뷰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용 후보자의 경우도 약 15분 분량의 영상이었는데요. 기자들의 주된 질문은 비례의원 사퇴 여부,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한 것과 각종 의혹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질문들이었죠.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을 왜 용혜인 후보로 바꾸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정책 때문인가요, 아니면 '정치' 때문인가요.
▲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발언하고 있다
손오공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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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유엔이 '2년 안에 바꾸라'고 요구했던 여성인권 과제들, 얼마나 달라졌을까?
차별금지법 제정,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의 인력·기술·재정 자원 대폭 확대, 비동의 강간죄 도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배상. 유엔이 한국 정부에 2년 안에 이행하라고 요구했던 과제들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앞서 2024년 6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를 마치며, 특히 시급하다고 판단한 네 개 권고에 대해 2년 이내 후속조치 이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5월 중간이행 현황 보고서를 제출했는데요. 시민사회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권고 이행 여부를 검토한 NGO 보고서를 지난 1일 위원회(CEDAW)에 제출했습니다.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20년 넘게 답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회가 발의한 법안 논의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여는 데 협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제시하고있다.
성평등가족부의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3%에 불과하며 현원은 전보다 불과 4명이 늘어나 성평등 정책의 전담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미흡한 수준이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관련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원하고 있는 법 개정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한국 정부는 여전히 '2015 한일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한편 일본국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승소 판결 이후에도 구체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릴게임 강시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위원회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권고에는 직접적인 강제력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위원회는 오는 10월 제93차 회기에서 한국 정부가 제출한 후속조치 보고서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미이행 또는 불충분한 이행으로 평가된 권고는 이후 한국에 대한 정기심의에서 다시 다뤄질 수 있습니다. 다른 유엔 인권 메커니즘이 한국의 여성인권 상황을 평가하는 데 참고될 수도 있습니다.
2년의 이행 기한은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지난 2년간 한국 정부가 무엇을 실제로 바꿨는지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성경제] 출산 5년 후 여성 소득, 자녀 없는 여성보다 43% 낮아
▲ 서울시내 학원가
한국 저출산의 원인을 '사교육 경쟁'과 '출산 이후 여성의 소득 감소' 등의 구조에서 찾은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지나친 사교육 경쟁이 없었다면 평균 자녀 수가 28% 정도 많아졌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더불어 출산 5년 뒤 여성의 소득은 출산하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해 43%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발표됐습니다.
이 분석, 지난 2일 한국은행·경제정책연구센터(CEPR)·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으로 개최한 '인구 고령화와 장수의 경제학: 도전에서 기회로' 콘퍼런스에서 제기됐습니다.
먼저 사교육부터 볼까요. 염민철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 등 연구진은 교육 경쟁에 대한 우려가 큰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고 하락 속도도 빨랐다고 진단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지위 경쟁' 효과가 없었다면 1970년~1975년생 여성의 평균 자녀 수가 2.45명(실제는 1.92명)으로 28% 늘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출산 후 소득에 대한 연구는 황지수 서울대 교수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황 교수는 이날 "1976~1985년 출생 여성 가운데 2005~2015년 첫 출산을 경험한 여성을 분석한 결과, 출산 5년 뒤 어머니의 소득은 자녀가 없는 여성과 비교해 43% 낮았다"고 밝혔습니다
사이다릴게임
. 반면 아버지의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황 교수는 "여성의 교육과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크게 확대된 것과 달리 직장문화와 가정 내 성 역할 변화는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육아휴직을 넘어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등 일상적으로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이 같은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출산은 계속될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는 '저출산·고령화 심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나 콘퍼런스 발표를 맡은 하야시 후미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명예교수는 "2020~2050년 중 고령화 속도가 홍콩, 한국, 대만, 중국 순으로 빠를 것이라면서 한국의 속도는 미국의 3배를 웃돈다"라며 "(일본에서 일어났던 30년 장기 침체 현상이) 한국과 중국, 대만, 싱가포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원더우먼] "나는 낙태를 했습니다" 53명의 선언, 그 중심에 있던글로리아 스타이넘
▲ 글로리아 스타이넘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온 미국의 작가·강연자·언론인·활동가·조직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일(현지 시각) 별세했습니다. 향년 92세.
<뉴욕> 매거진의 칼럼니스트였던 그는 미국 최초의 전국적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1972년 공동 창립했습니다. 그는 1973년 BBC와 한 인터뷰에서 잡지 창간은 "절박함에서 시작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해질 다른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 제약이 '여성의, 여성을 위한' 잡지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이죠.
1972년 미즈의 프리뷰호에 실린 '우리는 낙태했다(We Have Had Abortions)' 선언은 당시에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 가수 주디 콜린스, 스테이넘 등 당대 유명한 여성 53명이 이 선언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이들은 "나는 낙태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재생산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법의 폐지를 요구하는 수백만 미국 여성의 대열에 공개적으로 동참합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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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스테이넘은 "성인 여성 서너 명 중 한 명이 이런 경험을 한다면, 왜 우리 각자는 마치 범죄자처럼 혹은 혼자인 것처럼 느껴야 할까요?"(1983년, 10월 12일) 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3일 그의 부고 기사를 통해 "스테이넘만큼 페미니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페미니스트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고 평했는데요. 그는 언론인으로서뿐 아니라 여성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 가정폭력 그리고 직장 내 불평등, 여성의 재생산권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실제 스테이넘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증진하는 전국여성정치연합과 언론 매체에서 여성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는 여성미디어센터 등을 비롯한 여러 단체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여성·소녀를 위한 풀뿌리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미즈 여성재단도 공동 창립했습니다. 이 같은 헌신에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 최고 시민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그의 가치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답변을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2019년 여성미디어센터 행사에서 한 남성이 스테이넘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남성인 제가, 여성운동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는 답했습니다.
"페미니스트란 여성과 남성의 평등과 온전한 인간성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확고한 페미니스트이자 인도주의자인 남성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어 '아버지·남편·아들·형제들이 여성운동의 진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스타이넘은 "남성 역시 가정과 돌봄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성별에 갇히지 않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돌봄은 여성의 몫이고 야망과 자기주장은 남성의 몫이라는 식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기존의 성역할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다음 세대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50년 뒤에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그때 이 세상을 살아갈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의 영면을 빕니다.
식은 앞서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