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에서 물이 멈추는 순간, 도시는 하루 만에 멈춘다. 2025년 강릉의 저수율이 한 달 사이 급락하고, 서울 도심 도로가 국지성 호우에 반나절 만에 침수됐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물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경제와 산업을 흔드는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떠오른다. 최근 기후 위기는 물관리의 질문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공급하고 처리했는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언제 어느 지역에 위험이 닥치고, 서비스는 얼마나 지속되며, 위기 이후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같은 지역에서 물 부족과 집중호우가 번갈아 나타나고, 폭염이 수요 급증과 수질 악화를 동시에 부르는 시대다. 물관리 지표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정책은 위기에 늘 한 걸음 늦게 도착한다.
김경민 -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과 입법조사관, 연세대 환경공학 박사, 현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평균값의 함정
우리나라 물관리 성과 지표는 그동안 상· 하수도 보급률, 수질 달성률, 시설 용량, 사업 집행률 등 정상 운영 성과를 확인하는 데 초。을 맞춰 왔다. 2018년 제정된 ‘물관리기본법’으로 통합 물관리의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아직 성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 성과 지표(KPIs)는 시설 확충과 행정 실적을 관리하는 데는 유용한 지표였다. 그러나 기후 변동성과 지역별 취약성의 차이에 따른 변화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전국 평균과 연간 실적은 지역별·시기별 위험과 변화까지 알긴 어렵다. 국가 평균치상에서 공급이 안정적으로 보이더라도 특정 유역이나 도시, 특히 취약 지역별 사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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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수율 저하와 취수원 수질 악화, 상수관망 사고가 발생하면, 짧은 기간에 위기로 진입할 수 있지만, 기존 성과 지표에 의해서는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5년 강릉 가뭄이 그런 경우였다. 전국 평균 저수율은 정상 범위에 있었지만, 특정 유역의 저수율은 한 달 사이 급격히 떨어져 제한 급수가 시행됐다. 같은 해 여름, 도시 침수 사례에서도 국지성 집중호우가 특정 시간대의 하수 처리 용량을 초과하면서 짧은 시간에 도로와 지하 공간이 마비됐다. 재난이 발생한 뒤 피해액을 산정하는 방식만으로는 이런 급격한 위험 진입을 포착하기 어렵고, 조기 대응의 시。을 놓치기 쉽다는 걸 보여준다. 결국 현행 지표 체계는 위기가 이미 발생한 뒤에야 신호를 보내는 후행 지표에 가깝다.
물 안보의 재정의, 공급량에서 회복력으로
이처럼 기후 위기 시대의 물 안보는 공급량 확대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이제는 서비스의 지속성, 위기 이후의 회복력, 지역·계층 간 형평성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대체 수원 확보 일수는 취수원이 오염되거나 고갈됐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취수원 다변화율은 특정 수원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나타낸다.
관망 사고 복구 소요 시간과 침수 이후 도시 기능 회복 일수는 위기 이후 정상화 속도를 직접 측정하는 지표에 해당한다. 이들은 시설의 규모를 재는 지표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서비스가 얼마나 버티고 얼마나 빨리 되살아나는지를 재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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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미 회복력을 물 안보의 핵심 구성 요소로 명시하고 있으며, 우리 정책 체계에도 같은 관.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회복력이 지표로 편입될 때 예산과 조직도 위기에 앞서 움직이고, 시설 중심의 사업 관행 역시 서비스 지속성 중심으로 .차 재편될 수 있다.
국가·유역·지자체, 물·에너지·탄소 통합 지표 필요
새로운 물관리 지표 체계는 세 층위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공통 목표와 최소 기준을 정하고, 유역은 가뭄·홍수·수질을 아우르는 종합 관리 지표를, 지자체는 주민이 체감하는 서비스 지속 시간과 관망 사고 복구 시간을 관리한다. 세 층위가 같은 데이터플랫폼인 ‘물모아’로 연결될 때 조기 경보와 정책 조정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물관리의 영역도 함께 넓어져야 한다. 정수와 하수처리 과정은 국가 전력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물을 다루는 일은 곧 에너지를 쓰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공 하수처리 시설의 에너지 자립률은 2019년 12.9%에서 2024년 18.7%로 높아졌지만, 2030년 목표인 50%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되면서 물과 에너지, 탄소가 한 부처의 정책 틀 안에서 다루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물관리 성과 지표 역시 수질·수량에 머무르지 않고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까지 함께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물 1㎥를 처리하는 데 드는 전력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함께 측정하는 지표가 대표적이다. 이런 통합 지표가 자리 잡는다면, 기후 위기 대응과 물관리는 하나의 프레임 으로 움직일 수 있다. 지표의 층위와 영역을 잇는 작업이 곧 통합 물관리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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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과 법제로 이어져야 하는 물관리 지표
통합 물관리는 측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지표가 예산 편성과 사업 우선순위 그리고 법제 개정으로 이어질 때 실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표를 예산과 연동하는 재정 규칙부터 정비한다. 회복력·지속성 지표가 개선된 지자체와 유역이 다음 해 예산 배분에서 우선순위를 얻고, 지표가 악화된 지역은 원인 진단과 개선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성과 연동 방식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위기 대응 역량이 실적으로 기록되고, 다음 해 사업 설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둘째, 제2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30년 이후)에 위기 대응형 지표를 정식으로 편입시킨다. 현행 계획은 시설 확충과 보급률 중심의 목표에만 머물러 있다. 회복력·지속성· 형평성 지표 등을 새 목표 체계로 추가하고, 유역물관리위원회가 유역별 지표 표준화와 데이터 관리를 담당하도록 역할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물관리기본법에 성과 지표의 근거를 둔다. 현행법은 통합 물관리의 원칙만 선언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지표의 수립·평가·공개 절차가 부처마다 그리고 계획에 따라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국가·유역·지자체별 성과 지표의 수립, 평가, 공개, 정책 환류의 기본 원칙이 법제화되어야 지표 체계가 계획 주기와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더 많은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균 관리’에서 ‘위험관리’로, ‘공급량’ 중심에서 ‘서비스 지속성과 회복력’ 중심으로, ‘사후 평가’에서 ‘조기 경보와 정책 조정’ 중심으로 전환해 가는 흐름이 필요하다. 선진적 물관리 성과 지표는 결국 국가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며 그 출발은 지금 이 자리에 놓여 있다.
표의 수립, 평가,